[콰직]
그녀가 날린 무릎에, 한 놈의 안면이 쓰고 있던 방독면과 함께 형편 없이 우그러지며 뒤로 젖혀졌다.
“씨팔, 대체 뭔”
얼굴이 찌그러진 무뢰배 너머의 폐점포에서 그 광경을 보곤 욕설을 내뱉으며 권총을 치켜 올리던 괴한은, 눈으로 흘러든 땀에 잠시 눈을 감았다 뗀 순간 바로 눈 앞, 그의 가슴께에서 새까만 머릿결이 휘날리는 걸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왼 뺨과 광대가 터져나가는 고통과 함께 의식을 잃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다른 패거리들은 그제서야 황급히 충격에서 깨어나 각자 무기를-그게 파이프를 얽어 만든 조잡한 권총이건,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용케 썩어버리지 않은 당구 큐대건-꼬나쥐고는 그녀에게 달려들었으나, 그들은 너무나도 굼뜨고 설익었다.
손에 쥐고 있던 경찰봉의 끝으로 작은 원을 한 바퀴 그리며 묻어나온 피와 살점을 털어내면서, 그녀는 빈 손으로 방금 전 쓰러트린 자가 쥐고 있던 파이프 권총의 총신을 쥐어 들고는 폐점포의 깨진 유리창을 넘어오려는 자의 눈을 향해 집어던졌고, 그 권총이 놈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겨눠진 총구의 수를 확인하며 점포의 깊숙한 곳으로 몸을 날렸다.
수 자루의 파이프 권총이 소득없이 불을 뿜었고, 그 다음에 닥쳐온 것은 발코니에서 뻗어나오는 고열의 빛줄기 세례였다.
“레이저다! 애슐리가 죽었어!”
“젠장, 저 멀쑥이도 아직도 살아있었어?”
”애초에 죽지도 않았잖아!”
”그 씨발년은 어디로 간거- 아아악!!”
[으르륵, 으르륵]
악에 받쳐 소리치던 마지막 한 놈, 아니 한 년의 권총을 쥔 손을 개 한 마리가 사정없이 물어 뜯으며 늘어졌다. 깡패년은 목청껏 비명을 질러댔으나, 그녀의 동료란 것들은 발코니의 레이저 저격수를 피해서 각자 거리의 엄폐물들 사이로 흩어진 지 오래였다.
고통과 공포에 질려 이제는 죽었다고 자포자기하면서도 몸부림치는 이 깡패 여자의 생각과는 달리, 그녀는 다른 패거리 동료들보다는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다. 점포 뒷문으로 돌아나온 그녀에게 경찰봉의 뭉툭하고 묵직한 끝으로 정수리가 박살나거나 목뼈가 어긋나버리며 한 명 씩 최후를 맞이한 그녀의 동료들에 비하면 한 1분 정도는 더 오래 산 셈이었다.
그 1분 동안 손을 물어 뜯는 개를 필사적으로 떼어내려 하며 고통에 시달린 것을 감안할 때, 사실 그리 좋은 일도 아니었다. 뭐,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녀를 만난 시점에서, 패거리가 가벼운 마음으로 시체 하나를 늘리고자 그녀에게 총을 겨누고 쏜 시점에서, 좋은 일이 일어나긴 힘들게 된 것이다.
“솜씨가 대단하시군요!”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경찰봉 끝으로 널린 시체들을 하나씩 툭툭 건드리며 살피고 있던 그녀에게 생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저 자가 있었군.’
“보아하니 레이더 같지는 않으신데,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격식있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흑단빛을 띈 얼굴에 베이지 색 코트와 모자를 걸친 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에 이 곳을 올 때 눈에 담아뒀었으나, 싸움 도중에 그녀를 노리지 않아 어느새 잊고 있었던 자였다.
‘무기든 자가 주변에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니. 나도 어지간하네.’
다시는 이딴 형편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녀를 향해, 발코니의 사내가 목청껏 소리쳤다.
“이 안에 정착민들이 여럿 있습니다! 레이더들이 이미 건물 안에 들어와있고, 곧 저희가 있는 곳 문을 뚫고 들이닥칠거에요! 당신이 놈들을 뒤에서 쳐준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부탁합니다!”
‘별로 얽히고 싶지는 않은데. 아까도 대가리에 총 맞을뻔 했고.’
그녀가 별 반응 없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자, 사내는 애가 탔는지 이윽고 뭔가를 들어 올려 바닥을 향해 던졌다.
“지금 던져드린 그건 레이저 머스킷입니다! 이 동네에선 보기 힘든 물건이죠. 그걸 드릴테니 좀 도와주십시오. 정말 부탁합니다!”
다음 순간 사내가 서있던 발코니 뒤켠에서 뭔가 큰 소리가 나고는, 사내의 모습이 발코니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잠시 사내가 사라진 발코니를 바라보다가 다시 시체들을 뒤적여서 시체들이 두르고 있던 고철과 가죽 쪼가리 몇 개를 몸에 동여매고는 사내가 있던 건물의 정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의 발에 무언가가 채였다. 아까 흑단빛 사내가 던진 전선이 달린 총이었다. 그녀는 그 ‘레이저 머스킷’을 잠시 쳐다보다가, 픽하고 웃음을 흘리고는 총을 밟으며 그대로 건물의 정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촤악>
그녀의 눈 앞에서 피가 눈부시게 터져나왔다. 그녀 생애 처음-처음일까?-맛보는 생피 세례였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코로 그 기분을 음미하려다, 옆의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우당탕거리는 소리에 바로 바닥으로 몸을 굴려 전시대 뒤로 몸을 숨기고는 오른 손의 경찰봉을 단단히 고쳐잡았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녀의 콧구멍은 벌름거리며 인중에 묻은 남자의 피를 빨아들였고, 입은 쉴새 없이 쩝쩝대고 있었다.
“에잇, 대체 어디- 썅! 여기 엘란이 뒈져있다!! 오른쪽 귀 위가 다 날아갔어!!”
“아가리 함부로 쳐놀리지 말고 조용히 말해! 그 년이 어디서 듣고 있을 줄 알고!”
“여기 어딘가 있는 거 아냐?”
두 쌍의 발 걸음 소리가 전시대 너머에서 울리다, 그녀와 전시대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작게 헐떡이던 숨을 최대한 낮추었다. 한 순간 입에 단내가 고였다.
“진짜 좆같네. 왜 여기서 아직도 이러고 있는거야?”
“뭔 개소리야 그게. 대장 말 못들었어? 캡주머니 놈들이 저 안에 틀어박혀 있잖아.”
“미친 새끼야. 네 뇌는 장식이냐? 어떤 미친 년이 정문으로 들어와서는 우리 애들을 하나씩 작살내고 있다고. 난 씨발 이딴 거지같은 박물관에서 죽치다가 뒤지고 싶진 않아!”
“개수작부리지 마라. 장담하는데, 니새끼가 여기서 튀려고 한다면 대장이 아니라 나한테 뒤지는 거야. 이제 씨발 아가리 좀 하고 집중해. 그래야 저년보다 더 빨리 총 쏠 꺼 아냐.. 저 년이 아무리 날쌔도 총보다 빠르겠-”
다음 순간, 그녀는 불쑥 몸을 일으켜 그녀가 숨어있던 전시대 바로 너머에서 입을 놀리던 자의 목덜미를 잡아채서 그녀 쪽으로 당겨 내동댕이치고는, 오른 손의 경찰봉을 번쩍 들어 역수로 고쳐쥐고는 놈의 목울대를 향해 내리찍었다. 놈의 성대와 목뼈가 함께 짓눌려 버무려지며, 입에서 혀가 용수철 튀듯 튀어나오는 꼴이 마치 광대 장난감이 고장나는 꼬라지였다.
그 소리에 앞서던 놈이 뒤를 돌아 총을 들어 올렸지만 전시대를 가볍게 타넘는 그녀의 발길질에 총을 놓치고 말았고, 이윽고 착지한 그녀가 이번엔 반대편 발로 옆구리를 강타하자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그 뒤로는 방금 전 동료가 당한 것을 그대로 당하는 것 뿐이었다.
목구멍이 짓뭉개진 시체 두 구에서 권총을 뺏어든 그녀는 잠시 문간에 기대어 바깥을 살피다, 문을 나서 건물의 거대한 홀로 들어서며 눈에 들어오는 자들을 향해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총 일곱 발의 총성, 왼 손에 든 건 네 발 발사 후 잼이 났고, 오른 손에 든 건 장전된 탄이 세 발 밖에 없었다. 문간에서 눈에 담아뒀던 세 놈 중 고작 한 놈만 쓰러진 걸 보며 작게 욕설을 읊조린 그녀는 총 두 자루를 모두 내던지고 허리에 꽂아뒀던 경찰봉을 뽑아들고는 다시 날듯이 몸을 날렸다.
‘사내놈들 좆대처럼 힘아리 없는 총 같으니라고.’
잠시 후, 남은 두 놈의 가슴 뼈를 박살내고 시체를 뒤적거리고 있던 그녀 뒤로, 문이 활짝 열렸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열린 문으로 날아들려다, 문간에 아까 본 베이지 색 옷의 사내가 있는 걸 보고 몸을 멈췄다.
“이야,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타이밍 하나는 기막히군요. 프레스턴 가비입니다. 커먼웰스 미닛맨 소속이죠.”
반갑다는 듯이 말을 걸어오는 사내를 향해,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는 다가가 열린 문간을 넘어갔다. 사내가 싱글거리는 얼굴로 문간에서 비켜섰다.
안에는 그녀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내를 제외하고는, 남자 둘, 여자 하나, 그리고 노인 여자 하나. 사내의 동료들인 듯 했으나 그녀에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에겐 어차피-
그녀가 생각을 이어나가려 하던 찰나, 베이지 빛 코트와 중절모-지금 보니 갈색에 더 가까웠다-를 걸친 사내가 먼저 말을 붙여왔다. 그의 말은 격식을 갖추고 있었으나 산만하고 혼란스러웠으며, 예의를 차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으나 그걸로는 절박함과 곤궁을 감추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며, 그에게서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들었다.
사내는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말해줬다. 국가도 법도 질서도 없고, 사방에 서로를 강도질하려 애쓰는 깡패-레이더라고 부른다-들이 날뛰며, 피부가 벗겨진 500년 이상 된 방사능 인간들이 인간들 속에서 같이 살아가고 그 중 미친 자들은 인간의 생살을 탐한다는 것을. 그 외에 사내가 자기네들이 처한 처지에 대해서 주절대는 것도 있었으나 그녀가 알 바는 아니었다.
“이봐요. 지금 우리가 곤경에 처해있지만 못 빠져나갈 건 아닙니다. 스터지스? 설명해-”
“아니, 됐어요.”
“예?”
흑단빛 사내의 예의바른 얼굴이 일 순간 멍청하게 구겨졌다. 그녀는 면전에서 씩 웃어줄까 하다가, 그 사내가 그녀를 귀찮은 일에 얽매이게 하려던 것을 떠올리고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 무서운 괴물 같은 게 온다 했잖아요? 전 별로 얽히고 싶지 않네요.”
“아니, 아직 들어보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옥상에”
“자살행위를 하는 취미는 없어요. 아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굳이 지금 그 취미를 남을 위해 즐기고 싶은 기분은 안드네요. 나 혼자라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데, 내가 당신들을 왜 돕죠?”
“이봐요, 지금 여기 이 사람ㄷ-”
“됐어요. 난 빠질거에요.”
그녀는 심드렁한 얼굴을 보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뒤돌아섰다. 그러자 흑단빛 사내의 얼굴이 당황을 넘어서서 허탈함과 분노로 덧칠되었다.
“그냥 그러깁니까? 에? 여기까지 와놓고 이 불쌍한 사람들보고 죽으라 하는거요?”
날아오는 날카로운 말에, 그녀의 눈이 좁아지며 고개가 살짝 뒤돌아갔다.
“여기까지 뚫어줬으면 충분하지 않나요?”
“제길, 알았습니다.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몸 간수 잘해보시고- 적어도 여기 우리 중 한 명은 살아남겠지. 썅!”
마지막의 상소리에, 그녀는 순간 멈춰서서 잠시 ‘몸을 돌릴’까 하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방을 나서 정문으로 향하는 층계참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뒤편으로, 방금 자신의 목숨이 생사의 저울 위에 올라갔다는 것을 모른 채로, 사내가 여전히 분한 표정으로 짓고 씨근거렸으나 그녀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조용히 정문을 열고 건물을 나선 뒤, 건물로 다가오고 있는 다른 레이더들의 행렬을 몸을 숙여 조심스레 따돌리며, 그녀는 생긋 웃었다. 방금 전에 나눴던 대화가, 정확히는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있는 지에 대한 설명이 떠올라서였다.
세상은 형편 없이 망가졌다. 그녀에겐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를 얽매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도 망가지지 않은 부분이 꽤 많이 남아있었다. 그녀에겐 더 좋은 일이었다.
그건, 그녀가 망가뜨릴 것이 남아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가지고 놀고, 찢어 부숴트리고, 더럽히고 물들일 것들이 그렇게나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녀의 생긋거리는 미소가 비틀리고 짙어지며, 입가에 침이 잔뜩 고이다 흘러내렸다.
스스로의 생각에, 그녀는 뜨겁게 젖어들어갔다.